소주(蘇州)는 중국 장쑤성 남동쪽의 타이후 동쪽에 있는 운하도시입니다. 면적 8,488㎢, 인구 574만 명(1997)의 역사적인 도시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 時代)에 오(吳)나라의 수도로 발전하였고, 수나라 때에 대운하가 개통된 이후 창가 유역에서 가장 먼저 개발되어 시내 운하망을 중심으로 강남의 무역, 행정의 중심지로 군사적, 상업적인 전략적인 도시로 발전해 왔습니다. 운하망(運河網)이 발달되어 ‘물의 도시’로 불리기도 합니다. 수(隋)나라 때 강남미(江南米)의 수송지로 활기를 띠면서 항저우(杭州)와 더불어 ‘천상천당 지하소항(天上天堂 地下蘇杭)’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영하였습니다.
상하이가 개항하기 전까지는 우쑹강(吳淞江)의 수운을 이용한 외국무역도 활발하였습니다. 전통적인 견직물·자수제품이 유명하고, 명(明) 나라 이후부터 면포의 생산도 많아졌습니다.
12 세기 소주의 상류 계층 사이에서는 편안하게 물러나 책을 벗하며 쉴 수 있는 작고 조용한 정원을 꾸미는 일이 유행이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 높은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인공 연못을 파고 나무와 풀을 심고는 정자를 지어서 천당이 부럽지 않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10여 개의 정원이 수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있으며 가장 유명한 곳이 소주의 4대 정원으로 불리는 ‘졸정원’, ‘유원’, ‘사자림’, ‘창랑정’이 유명합니다. 이 중 ‘졸정원’과 ‘유원’은 북경의 ‘이화원’, 건륭제의 여름별장인 ‘피서산장’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명원에 속합니다
1. 졸정원(拙政園)
졸정원은 1509년 명나라 때 이곳에 살던 부호 왕헌신이 절을 사들여 개인 정원으로 바꾸어 만든 정원입니다. 수많은 기암괴석을 가져와 정원을 꾸미고 아름다운 건물을 짓고 정원의 절반이 넘을 정도로 큰 연못을 파고 꽃과 나무를 심어 조성한 완벽한 정원입니다.
정원은 동, 중, 서원 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동원 한가운데 있는 천천정(天泉亭)은 위로 들린 처마가 인상적이며 사방으로 뚫려 시원스러운 풍경을 담아내는 유리창이 아름답습니다.
중원에 있는 등관루에서 바라보는 졸정원의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 하여 항상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합니다.
소주의 정원 양식은 정원과 연못, 건물의 배치를 조화롭게 한 데 있습니다. 정원의 한편에는 어김없이 태호에서 채취한 태호석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화산에서 캔 것 같은 온갖 추상적인 모양을 하고 울퉁불퉁한 수석형으로 정원에 자연미를 한 껏 살립니다.
소주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정원인 졸정원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비단장수 왕서방의 일화를 탄생시킨 곳입니다.
2. 유원(留園)
유원(留園)은 ‘오래 머물고 싶은 정원’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성의 북쪽에 위치하여 졸정원과 비슷한 시기인 1525년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1593년 21년만에 완공되었습니다.
유원은 명나라 때 관리의 개인 정원(私園)이었습니다. 청(淸)나라 때 후락해진 정원을 관리 유소(劉恕)가 수리하여 ‘한벽장’으로 개명하였습니다. 1832년 일반에 공개가 되면서, 유명한 볼거리가 되었습니다. 1876년 관원이었던 성강이 이 정원을 다시 개보수하면서 유원(留園)이라 개명했습니다.
제2차 중일전쟁, 태평천국의 난 때에도 정원이 파손되어 황폐해졌다가 1954년 정부에 의해 수리가 되어 개방되었습니다. 1961년에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었습니다.
유원은 괴석과 정자, 고목의 배치가 잘 조화를 이루는 정원입니다. 총면적은 3만 평방미터이며, 중앙, 동, 서, 북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중앙 부분은 원래 ‘한벽산장’이었던 곳이고, 바깥 세 부분은 확장하여 지은 것입니다. 동원의 관운봉(冠云峰)은 높이가 6.5m, 무게가 약 5톤으로 한 덩어리의 태호석(太湖石)입니다.
3. 사자림(狮子林)
원나라 1342년 천여법사의 한 무리의 제자들이 선원을 건립하였습니다. 그 중 정원은 원대의 유명한 화가이자, 조경전문가인 예찬(倪瓚)이 설계를 하였습니다. 천여법사가 천자산(天目山) 사자암(獅子岩)에서 득도한 스승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사자림이라고 지었다고 하며, 또는 정원의 가산의 대나무가 사자와 닮았다고 하여 사자림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건축물로는 입설당(立雪堂), 와운실(臥雲室), 지백헌(指柏軒), 문매각(問梅閣), 영호진(冰壺進), 옥감지(玉鑒池), 소비홍(小飛虹) 등의 건물들이 있습니다. 가산에는 사자봉, 함휘(含晖), 토월(吐月)이 있고 모두 유명한 가산입니다. 정원이 만들어진 후에 당대의 많은 시인, 학자들이 이곳을 방문하였으며 이곳에서 지어진 유명한 시화집에는 ‘사자림기승집(獅子林纪胜集)’이 있고, 그림으로는 ‘주덕윤(朱得潤)’의 ‘사자림도(獅子林圖)’가 유명합니다.
천여법사의 사후에 제자들이 거의 흩어져 버리고, 사원은 점점 황폐화되었다가 명나라 1589년 장안(長安)의 명성화상이 절을 중건하여 다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청나라 강희제 때 사원은 분리되고, 형주지부의 ‘황흥조’가 부친을 위해 구입을 해서 ‘섭원(涉園)’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청나라 강희제는 ‘사자림’에 와서 2시간 동안이나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고 합니다. 1771년 청나라 건륭제 36년에는 ‘오송원(五松園)’이라 불리었고 건륭제는 여러 차례 ‘사자림’을 놀러 왔고 “정말로 재미있었다”며 진취(眞趣)라는 친필과 인장까지 찍은 편액을 하사하였다고 합니다. 청나라 말기에는 황씨 집안이 쇠락하여 또 이곳이 황폐해졌습니다.
1917년에 상하이의 거부 패윤생(貝潤生)이 이곳을 구매하여 많은 비용을 들여 개축을 하여 다시 ‘사자림’이라고 이름을 고쳤습니다. 1954년 패윤생의 손자가 이곳을 일반에 공개하였습니다. 2,000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4. 창랑정(滄浪亭)
창랑정은 소주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1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소주고전원림으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으며 2006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습니다.
원래는 오대(五代)시대 오월국(吴越國) 광릉왕(广陵王)의 개인정원이었으나 1044년 북송 시대에 시인 소순흠(蘇舜欽)이 이곳을 사들여 물가에 창랑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별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창랑’이란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가 굴원의 책 초사 중 ‘창랑의 물 맑으니 갓끈을 빨아도 되리라’에서 비려온 말입니다.
면적은 1만 제곱미터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전체 분위기와 구조가 조화롭고 간결한 양식에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보여 독특한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정원 안의 산과 정원 밖의 연못 사이에 세워진 복랑(复廊:양쪽 공간 사이에 벽이 위치한 복도)에서 보면 산과 호수가 일체가 되어 안에는 산이 있고 밖에는 물이 있는 것처럼 보여 풍치를 더해주고, 특히나 창랑정에는 108종에 달하는 창문 양식이 있고 그 디자인이 매우 다양해 소주 정원 장식 창문 양식의 전형이라고도 불릴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양 옆의 돌기둥에는 구양수, 소순흠의 시가 새겨져 있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문자향(文字香, 문자의 향기)의 감동을 선사한다.
'생활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적 색채로 주변 공간을 조화롭고 소박한 멋의 일본 정원 (PART 2) (0) | 2024.07.13 |
---|---|
상징과 조화로움으로 추상적 아름다움으로 자연경관을 축소시킨 일본 정원 (PART 1) (2) | 2024.07.13 |
영국의 자연풍경식 정원 한 폭의 풍경화를 떠올리게 하다!! (0) | 2024.07.12 |
빌라 데스테 -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 정원 건축의 정수인 경이로운 정원 (0) | 2024.07.11 |
빌라 아드리아나 -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 된 지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했던 별장 정원 (0) | 2024.07.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