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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고종 황제가 사랑한 가배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by 해피샤론 202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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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배차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에 의해 발견된 커피는 중동 전역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커피가 이슬람 세력의 확장에 따라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커피가 이슬람 세력에 의해 알려지다 보니 기독교 지역인 유럽에서는 이교도들이 마시는 음료라 하여 커피에 대해 나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 ‘이슬람의 와인’, 악마의 유혹’. ‘야만인의 음료등 이라고 폄하하는 말로 마시지 말라고 했지만 한번 커피 맛을 본 사람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1600년 경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 맛을 본 후 이 사탄의 음료는 이교도 놈들만 마시도록 놔두기에는 너무 맛있다라며 반대자들을 뿌리치고 커피를 축복하여 승인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유럽에서 대중화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계로 퍼져 나간 커피는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요?

1.    우리나라에 들어온 커피 가배차

19세기 말 무역이나 선교 등을 여러 가지 목적으로 조선으로 들어온 서양인들에 의해 커피가 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커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884 1월 미국인 퍼시벌 로웰이 한강변의 창랑정(滄浪亭)에서 조선의 최신 문물’이었던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커피에 대한 유입 경로에 대해 세 가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1890년경 중국을 통해 커피가 유입됐다고 1895년 발간된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일본을 통해서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1888년 일본이 인천에 국내 첫 호텔인 대불호텔과 슈워드 호텔을 세웠는데 이곳에서 커피를 판매했다고 합니다.

셋째는 선교사와 외국 공사들을 통해 커피를 들여왔다는 것입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커피는 가배차또는 ‘가비 차’로 불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어 발음에서 비롯한 중국식 또는 일본식 표기입니다.

지금도 중국이나 일본의 지방 도시에 가면 커피를 가배라고 표기한다고 합니다. 커피는 양탕국이라고도 불렸는데 서양에서 들여온 검고 쓴 맛을 내기 때문에 한약과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불렸다고 합니다.

2.    커피 애호가 고종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사람이 고종 황제라고 합니다. 고종이 1896년 좁을 길을 통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황급히 피신을 했습니다. 이 사건이 아관파천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생활하는 동안 러시아 베베르 공사의 처형인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의 권유로 커피을 접하게 됐다고 합니다. 고종은 쓰지만 강렬한 맛에 매료되었습니다.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서 생활하던 고종은 커피를 자주 마셨고 애호가가 됐습니다. 환궁한 뒤 커피의 맛을 잊지 못하고 커피를 계속 찾게 되었고 가까운 신하들에게도 커피를 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의료 선교사인 알렌이 궁중에 출입할 때 커피를 대접받았다고 한말 외국인 기록권4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종과 선교사들의 이러한 만남을 통해 제중원(세브란스병원 전신)과 기독교 학교인 이화학당, 배재 학당 설립에 고종의 윤허를 받았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종은 첫 궁중 카페라 할 수 있는 정관헌을 세웠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셨다고 합니다. 고종이 해외 선교사들과 접촉하는 것을 일본은 통제하려 했지만 고종은 정관헌을 이용해서 선교사, 외국공사와 자주 접촉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가배차

3.    정동 구락부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 정동 구락부는 아투아네트 손탁이라는 독일계 러시아 여성이 차린 것입니다.

손탁은 전쟁으로 고향이 프랑스에서 독일령으로 바뀌어 독일 국적을 가지게 된 독일인입니다. 그녀는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영어 등 4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으며 한국에 온 후로 한국어도 빠르게 익혀 통역사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개화기를 맞이한 조선에서 여러 나라의 외교사절들과 교류하며 그들을 관리하고 대접하는 역할을 잘하여 고종과 명성황후의 큰 신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손탁 여사는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생활하던 고종의 먹을 음식과 생활 물품 등을 관리하며 도와주었습니다. 이후 자신을 도와줬던 손탁 여사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고종은 정동에 하사했던 한옥을 헐고 서양식 벽돌 건물을 새로 지어주게 됩니다.

이 건물은 2층으로 지어졌으며 1층은 보조 객실과 식당, 회의실, 커피숍을 갖추었고 2층은 황실 귀빈들을 위한 접대 공간으로 지어졌습니다. 이 건물이 손탁호텔이고 1층에 있는 커피숍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인 ‘정동 구락부’입니다.

손탁호텔은 구한말 각국 외교관들이 각축전을 벌였던 곳으로 손탁 빈관, 한성빈관이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나오는 ‘글로리 호텔’과 호텔 주인인 쿠도 하나 모티브가 되었던 호텔과 주인이 손탁호텔과 ‘손탁 여사’라고 합니다. 손탁여사는 1904년 러일전쟁이 패배함에 따라 호텔 경영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1909년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었고 1918년 호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바로 옆에 있던 이화학당이 호텔을 사들여 기숙사로 사용하다가 1923년 프라이 홀(Frey hall)을 짓기 위해 손탁호텔을 철거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현재는 프라이홀도 1975년 화재로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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