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전이란 무엇일까요?
신전은 신의 집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을 말합니다.
일본의 신사는 신전의 일종인데요. 동일한 종교 건축에서도 주로 신도의 집회, 예배, 수행을 위해서 만들어진 시설, 즉 불교사원, 그리스도교의 교회당, 유대교의 회당, 이슬람교의 모스크 등은 일반적으로 신전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문화군에서 선사시대부터 존재하고 문화 발달에 따라서 각각 고유한 양식을 가진 신전 건축을 발전시켰습니다. 종교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졌던 고대에는 신전의 주변에 제단, 창고, 관리사무소 등의 부속건물이 설치되고 전체를 주벽으로 둘러싼 신역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신전은 정면에 두 개의 탑 사이에 입구를 연 필론(탑문)이 있으며 그 안에 주랑을 둘러싼 중정, 다주실이라고 하는 열주 공간을 거쳐서 부속실을 수반한 성소에 이릅니다 현존하는 전형적인 실례는 카르나크에 있는 콘스 신전이며 시대를 내려가지만 에도푸의 호루스 신전이나 덴데라의 하트홀 신전도 보존이 양호한 실례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집트의 대신전은 증개축을 반복함으로써 위에서 언급한 기본적인 요소가 중복되어서 평면이 복잡해지며 카르나크의 아몬 대신전에는 10기의 필론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집트의 신전은 거석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카르나크의 대다주실의 내부는 103m×52m로 넓고 중앙부는 직경 3.58m 높이 21.08m의 원주를 세웠으며 천장 높이는 24.08m에 이르는데 원주나 벽면은 극채색의 부조로 덮여서 매우 화려합니다.
왕을 제사 지내는 장제 신전은 왕과 태양신 라 및 많은 신들의 복합 신전이 되어 성소는 복잡한데 기본적으로는 일반의 신전과 다름없습니다.
마디나트 하브에 있는 람세스 3세 신전은 석조의 대신전을 중심으로 벽돌로 만든 부속건물이 세워진 314m×210m의 거대한 신역을 이룬 모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이집트 문명
나일강 유역에 있는 유적들을 살펴보면 대략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이집트 지역에 인류가 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수렵을 하는 채집인들과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점차 밀을 재배하는 농부들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8000년 경에 급격한 기후 변화가 일어나며 기존의 농경지가 메말라 붙고 거대한 사막으로 변해 버리자 살아남은 농부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훨씬 풍요로웠던 나일 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도시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6000년 경 나일 계곡에 신석기가 도래하였습니다. 신석기 시대에 점차 부락들이 왕국의 형태를 띠며 독자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였고 크게 남쪽의 상 이집트와 북쪽의 하 이집트로 나누어졌습니다.
이후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는 끊임없이 팽창했고 결국 충돌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 이집트의 메네스왕이 기원전 3150년 경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를 통일하면서 전 이집트의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집트의 문화는 메네스 왕 이후 약 3000여 년 동안 번성하였고 동시대 전 세계의 그 어떠한 곳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일 정도로 풍요로운 문명을 꽃피우며 국력을 만방에 과시하였습니다.
통일 후 찾아온 고대왕국 시대는 기원전 2700년부터 2200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때 기자의 피라미드를 포함하여 여러 피라미드들이 대규모로 건축되었습니다.
기원전 1550년부터 1070년까지 지속된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이집트는 국력의 정점을 찍으며 전 세계와 교역을 행했습니다. 이 시기 이집트는 남쪽으로는 리비아, 동쪽으로는 레반트까지 진출하였으며 역대 왕조들 가운데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하였습니다. 대중들에게 가장 알려진 파라오들이 등장한 시기도 바로 이때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하트셉수트 여왕, 투트모세 3세, 아케나텐과 그의 아내인 네페르티티, 소년왕 투탕카멘,이집트 최고 명군인 람세스 2세 등이 모두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입니다.
이 시기에는 세계의 첫 유일 신앙인 아텐 신앙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외국과의 잦은 접촉은 이집트 사회에도 변혁을 불러오며 다양한 아이디어의 도입들을 촉진하기도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BC4000-BC500)는 이집트 나일 하류와 수에즈 운하 일대에서 번성한 문명 및 국가의 총칭입니다. 이집트는 에티오피아 구원에서부터 시작된 물줄기가 나일 계곡을 따라 내려오고 나일 계곡 외곽은 매우 무덥고 건조한 사막 지대이고 대부분은 비가 내리지 않으며 간간이 생기는 오아시스 주변을 빼고는 식물이 전혀 자라지 않습니다.
이집트 인들은 대부분 나일강을 둘러싸고 집중되어 거주하였습니다.그래서 이 나일강은 석기시대와 나타가 문화 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집트 문화의 동맥입니다. 때문에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를 “나일 강의 선물”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나일강의 정기적 범람은 물을 일정하고 계획적으로 이용하는 기술을 발달케 하여 정치, 사회, 문화, 종교, 예술 등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풍성한 물의 이용을 원활히 하기 위해 태양력, 기하학, 건축술, 천문학이 발달하였으며 사막 지형으로 인해 시원한 녹음을 동경하여 수목을 중시하다 못해 신성시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따라서 수목원, 포도원, 채소원을 위한 관개시설이 발달하여 물이 이집트 정원의 주 요소가 되었습니다.
종교는 다신교로 영혼불멸의 사후세계에 관심을 가졌고 태양신 Ra, 저승의 신 Osiris, 토템적 자연숭배와 같이 서부 아시아와 달리 종교적 특징이 내세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특성이 이집트 조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로 이집트 정원이 특유한 형태로 발달하게 된 주원인이 되고 있으며 대표적인 것은 ‘장제신전과 사자의 정원’이 있습니다.
3. 장제신전
고대 이집트의 건축은 풍부한 석재를 사용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햇볕에 말린 벽돌을 주로 사용되었으나 제2 왕조 이후 왕릉(피라미드)이 신전은 모두 석조로서 주로 석회암이고 요소에 화강암이 사용되었습니다. 왕국과 주택은 왕조시대를 통하여 벽돌과 목재를 썼습니다. 석재의 재료로는 아스완의 화강암과 투르의 석회암, 시르시라의 사암, 하트느바의 알라바스티 등이 유명하고 목재로는 레바논의 삼나무를 즐겨 썼다고 합니다.
선 왕조시대에 있어서 각 지방의 신전은 간단한 오두막을 짓는 식인 듯하였으나 왕조시대 초기부터 본격적인 건축이 되고 후에 석재를 주재로 하고 형식도 복잡하게 되어 ‘신의 전당’으로써 손색이 없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면 입구의 탑문(塔門)과 중정(中庭), 전실(前室) 및 지성소(至聖所)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성지(聖地)와 나일강 수량계(水量計) 및 후기 왕조에는 특히 탄생전(誕生殿)이 부속 시설이 있으며 경내(境內)를 연와(煉瓦) 벽으로 둘러싸요 있습니다.
탑문 앞에 왕조의 거상(巨像)과 오벨리스트가 각각 한 쌍씩 세워지고 벽면 전체에는 신에 대한 숭배와 왕의 업적을 표시하는 채색부조(彩色浮彫)로 되어 있으며 앞칸은 다주실(多住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오벨리스크 ; 오베리스크(obelisk)는 신전의 탑문 앞에 좌우 일기마다 설치된 약간 끝이 가는4 각형의 거대한 석주로 끝은 4각추이며 기둥의 표면에는 히에로글리프비가 있습니다. 헬리오폴리스 태양신 숭배에서 기원한다고 전해집니다. 통상적으로 아스완의 화강암을 끊어 낸 것으로서 하트셉수트 여왕의 것은 높이가 30m, 300t 이상의 무게에 달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50기 이상이 침입자의 기념품으로 해외로 반출되어 있으며 원위치에 서 있는 것은 5기에 불과합니다.
장제 신전(葬祭神殿)은 특정한 왕의 장례와 제사를 위한 것으로서 신왕국 시대에 성행하였으나 구조적으로는 일반 신전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 신전은 테라스식인데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암굴 신전은 절벽을 이용하여 파서 만든 것인데 누비아의 아부심벨 신전이 대표적입니다.
건축의 특징을 살펴보면 신전은 예배 신전과 장제 신전으로 나뉘어 있는데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쪽엔 예배 신전을 건축하였고 서쪽엔 장제 신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열주가 있는 안뜰, 다주실, 성소로 이루어진 평면적 배치가 특징이며 분묘 구조에서 발생한 공간구조의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묘는 영혼 불멸을 믿었던 이집트 사람들은 묘, 즉 영원한 집의 건축에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선 왕조시대에는 원 또는 타원형의 수혈(竪穴)이었으나 제1왕조 경부터 직사각형 평면의 피라미드를 단두한 모양인데 기와나 석회암으로 만들었고 현실은 지하에 두고 사당은 지상에 설치한 마스터마분이 출현하였습니다. 사당의 방 벽면은 각종의 광경이 부조로 덮여 있으며 맨 안쪽에 영혼이 출입하는 위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왕묘의 경우에는 긴 종교 문서 비문을 새겨 두었습니다. 정중한 장례가 당시의 풍속이었고 부장품이 다량이기 때문에 이집트 미술의 공급원이 이기도 합니다.
이집트에서 주택은 신전이나 묘는 석재이기 때문에 유적으로서 많이 남아 있지만 건축 재료가 소멸되기 쉬운 볕에 말린 벽돌이나 나무 또는 갈대 등이었기 때문에 남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르나 유적이나 묘의 벽화나 가옥의 모형(부장품)등으로 대략 알 수 있습니다. 대저택은 연와로 담을 둘러싼 정원에 못을 파고 수목을 심었습니다. 건물은 이층으로 방이 열 개 이상인 것도 있으며 원주가 있는 파브리크의 방으로 나뉘어서 시중들의 방, 부엌, 욕실, 변소 등이 부속되어 있습니다.
가구는 침대, 의자, 작은 탁자, 장궤 등이고 벽걸이와 일종의 양탄자 같은 것도 좋아했습니다.창문은 천장 가까이 만들어져서 외부의 열을 차단하였습니다. 담벼락에 연하여 가축의 우리나 사일로를 설치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북쪽에 시원한 바람을 쏘일 수 있도록 테라스를 붙였습니다.
4. 이집트 정원
주택 조경은 현존하는 유적은 없으나 무덤의 벽화로 추정해 볼 때 바람이 많이 부는 사막기후 탓에 높은 울담이 있고 사각(방형, 구형) 공간을 갖는 정형적인 형태로 입구에는 탑문을 설치하였습니다.
이집트의 조각, 건축 등이 철저한 균형미를 살린 좌우대칭이듯이 정원 역시 주 축선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배치해 균형미를 느끼도록 하였습니다.
강수량이 적고 무덥고 건조한 기후는 고대 이집트 인들이 조경과 정원을 소중하게 여기는 계기를 만들어주어 자연스럽게 원예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는 ‘서구에서 최초로 정원술을 가진 나라’라는 명칭도 있습니다. 메리레의 정원이 대표적이며 정원 요소로는 침상지와 물가의 키오스크가 있으며 높은 울담 안에 몇 겁으로 수목을 열식 했습니다.
정원의 주요부에 연못(침상지)을 조성하여 키오스크(Kiosk 정자)를 설치하였으며 울담의 내부에는 물을 쉽고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대부분의 수목은 녹음을 제공하는 시커모아, 파피루스, 이집트 종려나무, 아카시아, 포도나무 시렁, 무화과, 석류, 대추야자 등과 같은 과실류 또는 녹음수를 식재하였고 연꽃, 장미, 아네모네, 양귀비, 자스민 등의 관목, 화훼류 등을 화단이나 화분에 식재하여 정원 통로 주변에 배치하였습니다.
연못은 홍수 때 물에 잠기지 않도록 나일강의 수위보다 높게 설치하였는데 연못 형태는 사각형이 대표적이고 T자형 2개 모양의 정형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규모가 큰 연못은 침상지(일반적으로 바닥보다 낮게 제작된 형태의 연못) 형태로 제단에 설치하였으며 연못에는 수생식물(로터스, 수련)을 심고 어류나 물새를 사육하기도 하였습니다.
물가에는 휴식이 가능한 키오스크를 설치하여 물에 비치는 반영의 아름다움과 주변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테베(Thebes)의 아메노피스 3세 떼의 한 신하가 그린 분묘 벽화는 높은 울타리, 탑문, 침상지, 4줄의 아치형 포도나무 시렁이 두드려져 있었고, 텔 엘 아마르나(Tel-el-Amarna)의 아메노피스 4세의 친구인 메리레의 정원도 대형 침상지, 원로가에 화문 배열 등이 돋보였습니다.
4. 하트셉수트 여왕
이 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은 델 엘 바하리(Deri-el-bahari)의 하트셉수트(Hatschepsut) 여왕의 장제 신전입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은 고대 이집트의 5번째 파라오입니다. 하트셉수트란 이름은 ‘가장 고귀한 숙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집트 학자들은 하트셉수트의 치세를 역대 파라오의 치세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트셉수트는 아버지 투트모세 1세가 정비와의 사이에 둔 유일한 자식으로 이복동생 투트모세 2세와 결혼했습니다. 병약했던 투트모세 2세가 요절하였을 때 의붓아들인 투트모세 3세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하트셉수트가 섭정이자 공동 파라오로서 이집트를 다스렸습니다.
장제 신전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정원 유적으로서 태양신인 아몬(Ammon) 신전으로 건축가 센누트가 설계하였습니다.
아몬의 계시에 의해 향나무를 수입하여 식재하였는데 신전은 3개의 노단으로 구성되었으며 노단의 경계벽을 열주랑으로 장식, 노단과 노단을 경사로(ramp)로 연결하였습니다.
입구인 탑문과 각 노단에 구덩이를 파고 수목을 열식 하였으며 노단의 경사를 이용하여 구덩이의 수목에 순차적으로 관수하였습니다.
조경적 특성으로 보면 주랑 건축 전면에 파진 돌구멍이 있고 외국에서 수목을 옮겨오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데르 엘 바하리의 산에 있는 제18왕조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 신전은 건축적 걸작의 하나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건축과 경관의 조화미에 있습니다.
데르 엘 바하리 신전의 배치는 일반 신전의 배치와 다르지 않지만 산 절벽의 발판에서 암벽을 등지고 있다는 사실로 건축의 전반적인 성격이 바뀌게 됩니다.
중앙의 경사로를 통해 계곡 밑바닥으로부터 상승하고 있는 3개의 테라스가 있으며 테라스 위에는 스핑크스들이 붉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PUNT 보랑’의 릴리프에서 외국에서 수목을 옮겨 놓은 모습을 보아 그 대지에는 수목들이 심어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각 테라스의 전면에는 기둥이 나열되어 있고 뒤쪽 벽면에는 여왕의 신성한 탄생과 건축 업적을 설명하는 릴리프가 새겨져 있습니다.
상단의 대지에서 보면, 나일강의 광대한 경관이 보이는데 데르 엘 바하리 신전 테라스의 긴 수평선은 암벽과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짧은 수직기둥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기둥에 의해 반복되는 명암의 율동은 멀리서 보아도 매우 인상적으로 보입니다.
또한 신전의 부지에 있는 석재로 건물을 세웠기 때문에 주변의 손대지 않은 바위들과 완벽한 조화를 보여줍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종교적 관념의 기반은 영원성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갈구하는 영원성을 이루어 내기 위해 건축에는 석재라는 재료를 사용해서 정밀한 세공과 강력한 선들로 기하학적인 형태와 빛과 그림자의 표현, 완벽한 경관과 조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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