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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민간정원: 풍수와 유교의 조화 1.   민간 조경우리나라 민간정원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경승지나 정원지에 조성한 제2주택인 별장 정원, 본체와 거리를 두고 건물을 지어 손님을 접대하거나 독서를 하던 별당 정원, 문인들이 세속을 피해 은둔과 은일을 목적으로 자연에 회귀하고자 경승지, 정원지에 지은 소박한 주거지 안에 지은 별서정원,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한 칩거실인 별업정원,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 간단한 누, 정을 세워 자연과 벗하기 위한 누정원림으로 나누어집니다.주택정원은 풍수지리사상을 기초로 후원과 화계식이 발달했으며 배산임수 및 양음택일을 중요하고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상, 하, 남, 여의 구별이 엄격하여 채와 마당으로 주택공간을 배치하였습니다.(서원, 궁궐, 민가의 배치에 영향을 줌)대표적인 민가정원으로는 전라남도 담양군에 .. 2024. 7. 16.
조선시대 궁궐정원: 자연과의 조화로운 풍수사상 1. 조선시대의 정원조선(朝鮮)은 고려시대의 불교의 폐단을 거울삼아 유교를 국교로 삼습니다. 유교는 기원전 중국 주나라 때에 공자와 맹자에 의한 체계가 갖추어진 수기, 치인을 위한 교리입니다. 음과 양의 이기 이원을 이론적으로 다룬 것이 바로 음양설인데 뒤에 오행설이 가미되어 음양오행설이 됩니다.조선조 중엽으로 들어서면서 정원의 연못은 거의 빠짐없이 방지 축도형으로 꾸며집니다. 연못 한가운데에 둥근 섬을 앉히는 것이 기본형으로 이를 방지원도라고 합니다.고대 중국에서 생겨난 우주관의 하나로 천문지방설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땅덩어리를 네모난 생김새를 가진 것으로 보고 하늘은 땅을 덮는 둥근 덮개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방지원도는 네모난 연못의 윤곽은 땅을 뜻하고 둥근 섬은 하늘을 가리.. 2024. 7. 15.
고려시대 정원 괴석을 이용한 석가산과 화려하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특징 918-1392년의 약 500년간 한반도의 국가였던 고려시대의 조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숭불 정책과 유교, 풍수지리, 중앙집권적 국가였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편찬되었으며 중국 송과 문화교류로 목판인쇄술과 고려청자가 발달하였습니다.1.    궁궐정원고려시대의 정궁인 만월대는 풍수지리 사상과 주계고기공기의 좌묘우사 전조후시의 원리를 적용하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터만 남아 있습니다. ‘동지’는 만월대의 동쪽에 꾸며졌던 후원의 큰 연못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연못 주위에 학, 거위 등을 사육하고 귀령각이라는 누각이 물가에 있어서 경관을 감상하였다고 합니다. 왕과 신하의 위락공간을 위한 정원이라고 보입니다. 왜구들로부터 노획한 배를 띄워 임금이 보시도록 했다는 기록을 보면 규모가 꽤 컸.. 2024. 7. 14.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정원 역사1 우리나라는 땅이 깊고 강수량이 많아 식물이 무성하고 자연경관이 수려하기 때문에 특별히 조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으로부터 각종 문화와 생활풍습에 크게 받았기 때문에 조경문화 또한 영향을 받았습니다.고조선 시대에 대동사강(大東史鋼) 제1권 단씨조선기(檀氏朝鮮紀)에 노을왕이 유(囿)를 조성하여 짐승을 키웠다는 정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 이후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불교와 한학이 들어온 4세기 이후부터 정원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고대로부터 가장 영향을 받은 것은 신선사상이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배경으로 송나라의 성리학자인 주돈이(周敦頤)가 설파한 애련설(愛蓮說)이었습니다. 20세기에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정원문화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고대 정원은 중국.. 2024.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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